그러니까 오늘 아침은 완전히 망했다. 연휴 이후 평소라면 만나보지 못했던 인파가 몰린 지하철에서 주변이 '남자들'로 둘러싸인 것..이다... 읽고 있던 책은 읽고 싶은 마음이 깡그리 사라져 버렸고 그나마 환승하고 자리에 앉았던 전철에서는 양옆으로 덩치들이 앉아 숨이 턱턱 막히기 시작했다. 


사실 오늘 아침엔 기분이 좋았다. 팀장이 자리에 없어서 여유 있게 출근할 수 있는 날이라는 사실이 좋았고 그래서 우유가 다 떨어져 시리얼은 먹지도 못하고 그릇째 식탁에 놓고 왔다는 사실도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날씨도 좋았다.


길었던 일주일의 연휴 이후 세상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출근길에 많던 그 여자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렸단 말인가? 심지어 어제는 계속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졸던 덩치 좋은 사내가 여자였다는 사실을 내리면서 확인하고는 소름이 돋았던 일도 있다.

나는 나보다 거대한 신체를 소지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남, 여 성별의 떠나서 위협감을 느낀다. 키 큰 사람은 물론이고 평균 남자 체형인 나보다 두꺼운 팔과 다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그 근육과 살에서 출력 가능한 파워를 생각하고 몸서리(두려움에)를 친다.


두꺼운 겨울 잠바에 끼여서 어제의 생각을 하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정면에 앉아있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옆에 앉은 덩치들과 숨 막혔던 8호선의 악몽이 잊혀지기 시작한다. 


쌀쌀해진 날씨에 트렌치코트와 무난한 오피스룩의 그 여자는 깔끔한 피부와 코트의 숄더에 살짝 거치는 길이의 검은 생머리를 하고 있다. 늘씬한 발목에는 영화 레옹의 마틸다의 초크처럼 한 줄의 포인트를 주어 검은색의 바지와 검은 구두가 깔끔한 맞춤을 이루고 있다. 여자가 화장을 고친다. 곧 내리려는 걸까? 화장은 얇다. 큰 눈은 휴대폰에 고정돼 내리깔고 있다. 옆에 앉은 남자의 덩치가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보면 여자의 키가 적어도 170에 가까울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 이런! 환승역이다. 


오늘 아침은 그렇게 망한 아침은 아닌 거 같다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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