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 Room, 2015

Room, 2015
룸

거위들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존재를 엄마라고 믿고 따른다고 합니다. 로렌츠의 각인이론(Lorenz's Imprinting)인데요, ["각인"―탄생 후 처음으로 보게 된 대상에 대한 애착―은 특정한 시점에 특정한 형태를 띠고 나타난 자극과 더불어 시작된다.]  우리들 역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각인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태어나서 자라온 이 세상은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하나의 작은 세상이 있습니다. 누구에겐 잊고 싶은 공간이지만 누구에겐 내가 살아온 (자연스럽고)당연한 공간입니다. 하나의 공간, 두 개의 세상에 대한 이야기, 영화 룸입니다.

   

영화는 2008년 오스트리아에서 실제로 발생한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되었습니다. 요제프 프리젤은 18살인 자신의 딸을 24년간 감금하고 7명의 자식을 낳게 했습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2010년 엠마 도노휴의 소설로 각색되었고, 영화는 소설을 그대로 영화화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는 끔찍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지 않고 7살인 잭(제이콥 트렘블레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합니다. 처음 잭과 조이(브리 라슨)의 모습을 보면서 요제프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떠올리지 못 했을 겁니다. 그러다가 여자아이를 잭이라고 부르는 것이 먼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때쯤 잭과 조이의 현실이 조금씩 드러나게 됩니다. 

룸이라는 공간은 잭과 조이에게 상반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잭에게 룸은 이 세상의 전부입니다. 잭은 TV를 보면서 세상을 진짜와 진짜가 아닌 것으로 구분합니다. TV를 통해서 보는 세상이 진짜인지 엄마 조이에게 매번 물어보는데 마치 올드보이의 최민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반대로 조이에게 룸은 7년동안 자신을 속박하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잭과 함께이기에 룸이라는 공간을 마냥 증오할 수 만도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조이에게 잭은 감금의 현실인 동시에 세상의(룸에 갇힌) 전부입니다. 7년간의 감금시간동안 조이는 잭에게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룸안에서 잭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고자 노력했다는 사실은 영화 앞부분에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방송 인터뷰에서 잭을 위해서 진정 필요했던 행동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조이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잭은 엄마 조이에게 룸으로 다시 돌아가면 안 되냐고 묻습니다. 잭은 룸에서 탈출해 조이가 살던 집으로 와서도 쉽게 적응하지 못했는데요, 엄마와 작은 룸이 전부이던 잭에게 낯선 환경들과 사람들은 오히려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햇빛마저 낯선 잭에게 문을 나가도 문이 나오고, 모든 문들 뒤에는 또 다른 안이 존재한다는 독백은 룸이 세상의 전부였던 잭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입니다.

결국 잭은 엄마와 함께 다시 룸에 찾아갑니다. 텅 비어버린 룸을 둘러보던 잭은 룸이 줄어든 것 같다고 말합니다. 좁은 방도 가구를 빼면 많이 넓어졌다고 느끼기 마련인데 잭은 어째서 룸이 작아졌다고 느꼈을까요? 거짓말을 잘 하지 않는 5살 아이에게 작아진 룸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잭은 문이 열려있기 때문에 이곳은 더 이상 룸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룸이 전부였던 잭이 룸 밖의 세상으로 나오면서 룸은 더 이상 룸으로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7살 아이가 바라보는 시각으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긴 여운이 남는 영화 '룸'이었습니다.

"방이 있다. 

그리고 바깥 세상. 모든게 TV세상과 같다. 그리고 천국.

식물은 진짜다. 하지만 나무는 아니다.

거미는 진짜다. 그리고 한번은 모기가 내 피를 빨아먹었다. 

하지만 다람쥐나 개들은 TV속 상상일 뿐이다. 럭키만 빼고.

럭키는 내 강아지다. 어느 날 날 찾아올 거다.

괴물은 진짜라고 하기엔 너무 크다. 바다도 마찬가지다.

TV속 사람들은 평평하게 생겼다. 색깔들로 만들어 졌다. 하지만

나랑 엄마는 진짜다. 그리고 닉아저씨...

난 닉아저씨가 진짜인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절반은 진짜일지.."

-영화속 잭의 독백 中

2016/03/13  The Lazy Gats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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