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 4 : 미래전쟁의 시작[Terminator Salvation, 2009] 2013
터미네이터 4 : 미래전쟁의 시작[Terminator Salvation, 2009]
: 문예창작학과 이나래『비어있음』을 읽고
이미 정해진 미래에서 기계들의 우두머리 스카이넷은 나를 죽이기 위해서 사이보그인 터미네이터를 과거로 보낸다. 그런 나를 지켜내기 위해 미래의 또 다른 나 역시 한 사이보그의 프로그램을 해킹해 과거로 보낸다. 기존 터미네이터와 액체금속으로 이루어진 신형 터미네이터의 대결을 그린 [터미네이터2-심판의 날]은 그렇게 일단락되는 줄 알았다(Terminator 2: Judgment Day, 1991). 하지만 스카이넷은 다시 한 번 업그레이드 된 터미네이터를 보냈고, 또다시 보기 좋게 실패했다(Terminator 3: Rise Of The Machines, 2003). 핵 공격을 막으려 했던 시도는 수포로 돌아가고 그렇게 미래는 다가왔다. ‘심판의 날’이라고 불리는 기계들의 핵 공격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은 저항군을 결성하고 기계군단과의 악몽 같은 전쟁을 치러나간다(Terminator Salvation, 2009). 바로 미래 전쟁의 시작이다.
영화에서처럼 무시무시한 사이보그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정해져있는 듯한 미래를 위해 살아가는 글쓴이의 불안함과 고민들은 터미네이터를 피해 도망 다니는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과 흡사했다. 영화에서 말하는 정해진 미래는 핵전쟁 후 기계들과 목숨 건 사투를 벌이는 삶을 이야기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미래란 어떻게든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라 생각하는 무책임한 해피엔딩의 삶이다.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어떠한 확신도 없이 '현실보다는 좋겠지'라는 희망적인 생각뿐이다. 그렇게 보장되어 있지도 않은 미래의 성공적 삶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우리의 청춘은 결코 쉽게 용납되지 못한다. 미래의 또 다른 나는 성공할 삶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과거의 내게 무엇을 보냈을까?
에세이는 이나래 학우가 TV다큐멘터리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흔들릴 것을 강요당하는 청춘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이다. 글쓴이는 현재 25살로 청춘의 중반을 지나고 있다. 여자로서 적지 않은 나이에 아직도 대학생인 그녀는 이미 취직한 주변 친구들과 결혼, 미래라는 불투명함 앞에서 혼란스럽기만 하다. 특히나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김연수 작가의 텅 빈 도넛 이야기를 통해 본래의 모습 그대로를 살아가지 못한 채, 도넛의 가운데 부분을 비워진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그곳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모두가 치열하게 살려고 하기 때문에 오히려 치열함을 잃어간다는 글쓴이의 생각에 공감가면서도 그저 동의할 수만은 없는 현실이다.
대학 졸업반에 이십 대 중반 이라는 나이가 되자, 무한 경쟁 시대라는 말이 다시 한 번 의미 있게 다가왔다. 매년 몇천 명씩 되는 졸업자들이 비슷한 모습으로 사회에 발을 내딛는데 정작 취업하고 싶은 회사에서 뽑는 인원은 정해져 있다. 그러다 보니 비슷한 사람들끼리 서로 잘났다고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안쓰러울 따름이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지만 글쓴이의 글이 인상 깊었던 이유도 글쓴이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 역시 모두가 똑같아지려는 모습이 싫었고, 내 모습 그대로를 봐주지 못하는 세상이 원망스러웠기 때문이다. 한 때는 남들과 같이 스펙을 쌓아야만 하는게 전부인 것인지 스스로 고민하던 적이 있었다. 생각을 하다 보니 요즘 같은 스펙화 현상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객관적으로 회사에서도 모두가 비슷한 사람들을 가려내기 위한 기준이 필요할 것이고, 결국엔 수치화된 기준이 스펙이라는 틀을 만들어 버리게 된 것이다. 요즘에는 기업에서 다양한 취업 방식을 도입해 스펙이라는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양해진 취업방식들 역시 또 하나의 틀로 자리 잡게 되지는 않을지 의문이다.
지나온 날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모두가 똑같아지려는 스펙화가 싫어도 우리는 최소한의 기준점이라는 부분에서 평균 수준에는 부합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만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지의 여부는 그다음 문제이다. 남들과 다른 특별한 재능이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3 수험생 생활을 마치고 꿈만 같던 대학생활이 시작 된지 언 8년. 나의 대학생활은 이제 졸업과 취업이라는 또 다른 끝과 시작 앞에 마주하고 있다. 언젠가는 끝이 올 것을 알면서도 걱정조차 하지 않았던 지난 대학생활이 얄궂게 느껴지긴 하지만 후회는 없다. 영화에서 핵전쟁이 시작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듯이 나 역시 취업이라는 미래전쟁이 시작될 것을 알고 있었다.
영화 [터미네이터]는 2014년에 시리즈의 5편이 개봉될 예정이다. 1984년부터 2014년까지 무려 30년째 이야기가 지속되고 있다. 우리가 예상하던 미래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인류는 멸망하지 않았고, 인류를 위협하는 기계군단과의 전쟁도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역경과 사고들이 우리를 위협하지만, 우리는 아직 실패하지 않았고 이겨낼 것이다. 그리고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시리즈가 30년째 이어져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스토리는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었다는 것이다.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항상 불안하고 남들과 비교되며 살아가지만 좀 긍정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흔들림조차 강요당하는 요즘이지만 내가 동요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스스로 삶에 대한 믿음과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든 주변에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미래전쟁의 주인공은 바로 나다. 글쓴이가 마지막에 말하는 도넛이야기를 빌리자면, 남들처럼 되기 위해 가운데 부분을 채울 필요도 굳이 비워낼 필요도 없다. 나만의, 나다운 도넛을 완성시켜 나가는 것이 미래전쟁을 시작하는 최초의 그리고 최고의 준비가 될 것이다.
2013년 1학기 [문학과 사회] 에세이과제 中
2016/12/21 The Lazy Gats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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