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후드 Boyhood, 2014

Boyhood, 2014
보이후드

일본 영화에서 제가 받는 기본적인 느낌은 '잔잔함'입니다. 일본의 코믹, 호러, 액션 장르들 역시 결코 뒤떨어지지 않지만, 저는 그 잔잔함 속에서 오는 긴 여운이 좋아 다시금 일본 영화를 찾곤 합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일본 영화를 보며 느꼈던 느낌을 받았습니다. 몇 분 보고 앉아 있으면 로멘스건 액션이건 '아 이건 헐리우드산'이라는 사실을 결코 숨기지않는 미국 영화에서 일본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 지루할법하다가도 뒤에 찾아오는 임팩트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영화 보이후드 입니다.

영화는 미국의 싱글맘 가정을 보여주는 드라마입니다. 기승전결의 기본적인 전개에서 벗어나 메이슨 가족의 일상생활이 기승전결에서 기-로만 쭉 이어집니다. 세월이 흘렀다는 사실도 성장한 메이슨과 사만다의 모습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을 뿐이죠. 일반적으로 영화가 사건을 중심으로 다루는데 반해서 보이후드는 사건은 생략하고 그 전후의 일상 모습을 다루면서 사람들이 영화의 흐름을 따라오게 합니다. 기존의 전개 방식을 생각하며 보이후드를 보다가는 그래서 대체 언제 사건이 터지는 거지?하고 기다리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메이슨과 사만다는 싱글맘 가정의 아이들입니다. 특히 메이슨은 아빠(에단 호크)와 대조되는 엄마(패트리샤 아퀘트)의 재혼남들과 갈등을 겪는데요.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어린 시절에 메이슨은 아빠와 재혼남들 사이에서 오히려 3자의 시선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같이 살지는 않지만 정기적으로 만나는 아빠와 보내는 시간들이 사만다와 메이슨을 조금씩 성장시키고 있지 않았을까도 생각해봅니다. 

매번 재혼남들과의 트러블로 눈가에서 눈물 멈출 날이 없던 엄마는 혼자가 되어서도 울먹이는데, 이번엔 이유가 조금 다릅니다. 메이슨과 사만다가 성인이 되어 독립을 하자 엄마는 노력하며 살아왔지만 모두 떠나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싱글맘으로 두 아이를 키우고 본인도 교수가 되어 커리어를 쌓아온 지난날에 본인은 그저 곧 죽일만 남았다고 하죠. 엄마의 울부짖음은 영화에서 지금까지 흘러온 시간을 돌아보게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삶을 잘 살아온 것일까? 하지만 엄마의 의미 없는 울부짖음은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이 반대로 의미없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는 총 12년에 걸쳐 촬영되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6살에서 18살로 성장하는 메이슨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1년에 한 번씩 스텝과 배우가 모여서 일정 분량을 12년간 촬영한 영화라고 하니, 3시간 가까이 되는 러닝타임도 12년을 다 보여주기에는 오히려 짧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12년을 보여준다면 역시 사건사고를 말해주는게 쉬울 텐데도 보이후드는 그 보다 사건사고의 변두리를 보여주는데 집중합니다.

보이후드에서는 영화 마지막에 메이슨이 친구와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주고 있습니다. 순간을 잡는 건 우리가 아니라, 오히려 순간에 잡혀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저게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애들 머리에서 나올 소리인지 의문이 드는 대화가 나옵니다.

보이후드에서는 결국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시간은 흘러가고 그렇게 지금의 내가 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사건사고가 큰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보다 긴 일상이 삶을 이뤄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상들이 우리의 순간을 채워가고 있다는 것이 보다 의미 있게 다가오는 영화입니다. 대수롭지 않을지도 모르는 순간들이 바로 우리의 삶입니다. 마치 보이진 않아도 공기가 없으면 우리는 살수 없는 것처럼. 영화 보이후드 였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말 있잖아, 

'순간을 붙잡으라고..' 그런데 잘 모르겠어.

내 생각엔 다르게 봐야할꺼 같아

'이 순간이 우리를 붙잡고 있는거'라고..

응, 알아  

시간은 영원한거잖아,

순간이라는건 늘 바로 지금을 말한다는 거.. 

그래..

-영화속 메이슨과 니콜의 대화 中

2016/06/19  The Lazy Gats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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